애니메이션 러닝타임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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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난중일기, 충무공 이순신 , Admirals Diary , 1997
국가: 한국
감독: 변강문
출연:
상영시간:
줄거리: 임진왜란에서 큰 활약을 한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국내 애니메이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노일 전쟁 당시 대마도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전멸시킨 일본 해군의 전설, 도오고 헤이하찌로 제독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리셉션장에서 유명한 일화 하나를 남겼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도오고 제독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추켜올렸다. 그러자 도오고 제독은 황급히 찬사를 만류하며 넬슨 제독이라면 자신이 그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은 감히 자기가 비교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전쟁이란 국민의 단합된 힘이 99%요 군인의 몫은 1%에 불과합니다. 넬슨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전쟁을 치렀고 이순신 장군은 안팎으로 음모와 시기 등 어려운 상황 아래 임진왜란을 치뤄 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 분과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분이 임진왜란때 보여준 전략은 제가 말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도오고 제독은 이어 자신이 러시아 발틱 함대를 깨부순 것도 사실은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학익진 전법을 응용한 것이라고 말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고 그 이후 일본 해군에서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재평가와 본격적인 분석 작업이 뒤따랐다고 한다. 1592년 4월 13일 새벽. 부산포 앞바다에는 일본의 왜선단 700석이 기민하게 숨어들고 있었다. 이를 보고 받은 부산성 장수 정발은 한양의 조정으로 급히 장계를 띄운다. 정발의 파발마가 한양에 도착하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바로 그 시간, 다대포를 지키고 있던 박홍은 부산포 앞바다의 왜선 700척을 보곤 겁에 질려 경상 우수사 원균에게 급히 구원을 요청한다. 군사를 통솔할 능력은 없고 그저 혈기만 왕성하여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원균은 수군을 이끌고 왜병 선단의 맞지만, 능수 능란한 왜병에게 연전연패하다가 결국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5월 3일 한양 점령, 5월 27일, 임진강과 개성 그리고 평양 함몰. 하지만 우리에겐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은 5월 6일, 당포에서 비참한 꼴로 다가오는 원균의 병선과 상봉한다. 이윽고 5월 7일, 옥포 해전!! 옥포는 후미진 만이다. 왜군들이 육지에 상륙하여 노략질을 일삼고 있을 그때, 이순신은 배를 하나씩 침몰시킨다. 옥포 해전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순신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거북선의 탄생, 그리고 첫 번째 전투. 조수가 밀물로 변할 즈음, 저만치서 나대용의 배가 나타난다. 순신의 표정이 밝아짐과 함께 섬찍한 괴성을 지르며 거북선 2척이 나타난다.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짐과 함께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철갑과 화포로 중무장한 철갑선인 거북선이 나타난 것이다. 앞장선 거북선은 적선으로 돌진하여 천, 지, 현, 황, 각양 총통 등을 발포한다. 순신은 사천 해전에서 왜 수군의 12척 모두를 불사른다. 연전연승! 그리고 학익진법! 한편 왜군들은 6월 평양을 점령, 함경도군의 대함대와 막대한 군량미가 펴양 옆 ---?? 야밤을 틈타 왜수군 연합 선단이 일시에 조선 수군을 공격할 신호였던 것이다. 순신은 왜병선을 이른 아침 관음포로 몰아 넣는데 성공한다. 관음포는 막다른 골목 같은 것이다. 뒤처져 있던 진인은 순신이 승리의 전기를 마련하자, 전공을 챙기기 위해 바삐 퇴각 일로의 왜병을 섬멸하겠다며 관음포로 들어간다. 장렬한 전사.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왜병선에 진인 선단은 위기일발의 상황을 맞게 되고, 이를 발견한 순신은 진인을 구하려고 관음포로 들어간다. 왜장에게 화살을 겨누는 순신. 그러나 위기에 소년병을 구하려던 순신은 화살의 방향을 소년병을 치려는 왜놈에게 쏘아버리고 자신은 왜장의 총에 당한다. 순신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을 병사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전투는 승리로 끝난다.
국가: 한국
감독: 변강문
출연:
상영시간:
줄거리: 임진왜란에서 큰 활약을 한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국내 애니메이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노일 전쟁 당시 대마도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전멸시킨 일본 해군의 전설, 도오고 헤이하찌로 제독은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리셉션장에서 유명한 일화 하나를 남겼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도오고 제독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추켜올렸다. 그러자 도오고 제독은 황급히 찬사를 만류하며 넬슨 제독이라면 자신이 그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순신 장군은 감히 자기가 비교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전쟁이란 국민의 단합된 힘이 99%요 군인의 몫은 1%에 불과합니다. 넬슨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전쟁을 치렀고 이순신 장군은 안팎으로 음모와 시기 등 어려운 상황 아래 임진왜란을 치뤄 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 분과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분이 임진왜란때 보여준 전략은 제가 말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도오고 제독은 이어 자신이 러시아 발틱 함대를 깨부순 것도 사실은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학익진 전법을 응용한 것이라고 말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고 그 이후 일본 해군에서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재평가와 본격적인 분석 작업이 뒤따랐다고 한다. 1592년 4월 13일 새벽. 부산포 앞바다에는 일본의 왜선단 700석이 기민하게 숨어들고 있었다. 이를 보고 받은 부산성 장수 정발은 한양의 조정으로 급히 장계를 띄운다. 정발의 파발마가 한양에 도착하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바로 그 시간, 다대포를 지키고 있던 박홍은 부산포 앞바다의 왜선 700척을 보곤 겁에 질려 경상 우수사 원균에게 급히 구원을 요청한다. 군사를 통솔할 능력은 없고 그저 혈기만 왕성하여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원균은 수군을 이끌고 왜병 선단의 맞지만, 능수 능란한 왜병에게 연전연패하다가 결국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5월 3일 한양 점령, 5월 27일, 임진강과 개성 그리고 평양 함몰. 하지만 우리에겐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은 5월 6일, 당포에서 비참한 꼴로 다가오는 원균의 병선과 상봉한다. 이윽고 5월 7일, 옥포 해전!! 옥포는 후미진 만이다. 왜군들이 육지에 상륙하여 노략질을 일삼고 있을 그때, 이순신은 배를 하나씩 침몰시킨다. 옥포 해전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순신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거북선의 탄생, 그리고 첫 번째 전투. 조수가 밀물로 변할 즈음, 저만치서 나대용의 배가 나타난다. 순신의 표정이 밝아짐과 함께 섬찍한 괴성을 지르며 거북선 2척이 나타난다.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짐과 함께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철갑과 화포로 중무장한 철갑선인 거북선이 나타난 것이다. 앞장선 거북선은 적선으로 돌진하여 천, 지, 현, 황, 각양 총통 등을 발포한다. 순신은 사천 해전에서 왜 수군의 12척 모두를 불사른다. 연전연승! 그리고 학익진법! 한편 왜군들은 6월 평양을 점령, 함경도군의 대함대와 막대한 군량미가 펴양 옆 ---?? 야밤을 틈타 왜수군 연합 선단이 일시에 조선 수군을 공격할 신호였던 것이다. 순신은 왜병선을 이른 아침 관음포로 몰아 넣는데 성공한다. 관음포는 막다른 골목 같은 것이다. 뒤처져 있던 진인은 순신이 승리의 전기를 마련하자, 전공을 챙기기 위해 바삐 퇴각 일로의 왜병을 섬멸하겠다며 관음포로 들어간다. 장렬한 전사.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왜병선에 진인 선단은 위기일발의 상황을 맞게 되고, 이를 발견한 순신은 진인을 구하려고 관음포로 들어간다. 왜장에게 화살을 겨누는 순신. 그러나 위기에 소년병을 구하려던 순신은 화살의 방향을 소년병을 치려는 왜놈에게 쏘아버리고 자신은 왜장의 총에 당한다. 순신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죽음을 병사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전투는 승리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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